23년은 기승전결이 있던 한해였고 그 안에서 개인도 일하는 그룹도 많이 성장했다. (나는 에듀테크 스타트업 콴다(QANDA)에서 콴다과외를 서비스하는 그룹의 데이터분석가로 일하고 있고 의도적으로 그룹 외 상황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에 회사나 그룹 같은 표현은 모두 콴다과외이다.) 작년인 22년에 데이터분석가로서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 22년에는 데이터가 흐르는 조직을 만들어서 원하는 데이터에 쉽게 접근 가능하고, (능동적으로 만들어낸 데이터가 아닌 과거 데이터를 열심히 보는 게 좋은 의사결정 방법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막무가내 의사결정보다는 최소한의 데이터가 가미된 의사결정이 가능하게 한다.
- 요약 데이터 보는 것을 데이터분석가를 거치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어 확보된 시간으로 고부가 가치의 일을 해서 그룹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22년부터 23년 초까지 내가 집중한 것
그래서 22년부터 23년 초에는 대시보드 한 판을 잘 만드는 것, metrics store를 잘 활용하게 하는 것, 그리고 (데이터를 많이 볼 수 밖에 없게끔) 실험 많이 하도록 넛지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지표 기반으로 일할 수 있게 임팩트에 대해 적을 수 있도록 넛징하고 굳이 다른 분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적혀있지 않으면 내가 분석해서 채워넣었다. 데이터가 완벽하게 흐르는 상태를 목표로 한 적은 없었기에 나름 당시 기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하고 더 의사결정의 중심에 들어가서 일하려 했다.
슬럼프에 빠지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사실 시작된지는 좀 됐지만 간당간당하게 비껴 갈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실질적인 변화가 있었다. 회사는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칼을 날카롭게 갈아 그것으로 찌르는 걸 준비했다.
칼을 날카롭게 가는 과정이 우리가 어떤 서비스인지 정의하는 것부터 진행되었기 때문에 굳이 여러명이 참가해서 혼잡하게 하기보다 소수의 사람들의 결정에 의존해야 했다. 이 결정이 길어지다보니 내가 딱히 할 게 없었고 이 과정에서 5월~6월 초까지는 슬럼프를 겪은 것 같다. 정확히는 슬럼프였다는 것을 빠져나오고 나서 알았다.
심리적인 부분이라 논리적 설명은 어렵겠지만 아래와 같이 기대한 결과값과 실제 결과값 사이 부조화로 인한 슬럼프였을 것 같다.
- input : 작년과 올해 초까지 굉장히 노력했다
- expected output : 서비스가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 real output : 함께했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상황이 되었고, 나는 별로 할 게 없어진 상태가 되었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많은 동료들이 슬럼프를 겪은 것 같다.
그리고 슬럼프가 지속되면서 [상자 밖에 있는 사람] 책에 나오는 상자 안에 있는 상태가 되었는데 그것이 악순환을 만들어 낸 것 같다. 그룹리더에게 몇 번 제가 이런 거 해보겠습니다 가져갔지만 진짜 문제 해결을 위해 가져간 게 아니라서 진행하다가 스스로 접은 적도 많았다.
슬럼프를 극복하다
그러다가 학생과 선생님을 매칭해주는 경험 전체를 오너십을 가지고 개선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이 목표를 잡은 과정이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고통스러워야하나 억울해서 잠 못 자고 누워있다가 문득 매칭을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나서 새벽 3시에 노션을 키고 간략한 아이디어들을 적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 바로 그룹리더에게 매칭 개선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메인 비즈니스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 과정은 비효율적이었으며 데이터로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굉장히 핏한 일이었다. 또한, 상자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협업 없이 혼자 속도감 있게 & 임팩트 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너무나 핏이 잘 맞았다.
좋은 아이템을 찾고 기분 좋아서 토요일 스타벅스에서 Phase1부터 Phase3까지 기획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매칭 담당하시던 분께 반영되었으면 하는 로직들을 전달받고 기존에 되어있던 API를 중심으로 추가적인 개발을 해서 개선시켰다. 사용법을 매칭 담당자 분들께 공유했고 처음엔 한 명이 테스트로 매칭하기로 했는데 며칠 안 지나서 모두가 수동 매칭 대신 새로 만든 로직으로 매칭한다고 들었을 때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이후 매칭 자동화까지 진행하여 3~4명이 매칭을 하던 상황에서 지금은 1명이 해도 되는 상황까지 되었다.
슬럼프를 극복하면서 얻은 두 가지 레슨런
이 때 성공 경험으로 슬럼프에서 빠져나온 덕에 하반기는 적극적으로 일 할 수 있었다. 특히 나름대로 두 가지 레슨런이 있었다.
하나는 데이터분석가라는 작은 직무 범위로 정의하지 말고 그냥 그룹 내 보이는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해내는 것이 나와 우리 회사를 위해 좋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평균적인 데이터분석가에게 요구하는 업무는 생각보다 수동적이다. 데이터 추출을 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없어서 데이터만 요청하고 분석은 본인이 하려는 태도로 일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러면 분석도 추출도 모두 할 줄 아는 절대우위 포지션의 사람이 데이터 추출이 상대우위가 되기 때문에 데이터 추출 위주로 하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이면 못 본 척하고 더 필요해보이는 일 위주로 했다. 심지어는 데이터랑 아무 상관 없는 일도 많이 했다 (혼자 한 것도 있고 같이 한 것도 있다). 일하는 구조가 좋지 않은 것 같다고 cross-functional 조직개편 건의하고, cross-functional 조직에서 같은 퍼널 개선이라도 ‘고객 상황별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같은 내용 주장하기 위해 피그잼으로 시각화해서 공유하고, cross-functional 조직에서 어떤 범위의 일을 할지 전장을 정의하고, 퍼널 기획하고, Display Ad 마케팅 어떻게 할지 커뮤니케이션하고, 새로 만드는 프로덕트 정책 짜고, 중요한 프로덕트 개선을 위해 워싱이 필요해서 워싱 노가다 하고, 알림톡 개선 건의하고, 카플친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솔직히 못한 것도 많지만 작년보다 압도적으로 회사 성장과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느낌을 받고 있다. 물론 존잡생각에서 얘기한대로 회사가 성장하면서 넓게 하는 것보다 좁게 해야되는 시기가 올거고 아마도 6개월 정도 뒤에는 이 레슨런을 unlearn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업무 범위를 좁게 정의하지 않고 그룹의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다니는 게 최적이었던 것 같다.
다음 레슨런은 결국 회사가 성장하려면 무엇보다도 인재밀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매칭 로직 짤 때 협업을 안 하려 했다는 것도 그 프로젝트의 인재밀도를 낮추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행히 겨울로 사람들을 보내고 까다롭게 채용하다보니 감사하게도 그룹의 인재밀도가 높아졌다. 높아진 인재밀도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그룹의 퍼포먼스가 지금까지 중 가장 좋아졌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속담을 나름대로 재해석하면 이렇다. 멀리 가는 길은 말 그대로 멀다. 먼 길을 가다보면 중간에 반드시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짧은 길을 간 것이 된다. 짧은 길을 갈 거면 혼자 빠르게 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 즉 인재밀도를 높이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결과적으로 먼 길을 갈 수 있다. 다시 속담을 보면 멀리 가려 했다는 것 자체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만 한다. 다행히 23년 말 기준 콴다과외는 멀리 가는 걸 준비할만큼의 인재밀도가 갖춰졌다.
글로벌 확장하는 팀에서 일하다가 콴다과외로 넘어오면서 제1 목표로 삼은 것이 역사적으로 많지 않은 업계 2위가 업계 1위를 이기는 경험이었다. 이전에는 근거 없는 도전의식에 가까웠다면 인재밀도가 높아지면서 퍼포먼스 뿐만 아니라 진행 과정이 만족스러워서 달성 가능한 목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 회고 살짝
회사 얘기를 많이 했으니 개인적인 얘기로는
- 독서: 책은 월 2권 조금 안 되는 수준으로 읽고 있고 그 책들이 직간접적으로 도움되는 상황이 많았어서 만족스럽다.
- 운동: 너무 불만족스러운데 헬스장을 끊어놓고 그냥저냥 하다가 그렇게 열심히 안 하는 것 같아 연장 안 했는데 그 뒤 변화가 불만족스럽다. 특히 단순히 건강만 안 좋아지는 느낌이 아니라 전반적인 밸런스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느다. 확실히 별로 안 할지언정 헬스장은 끊어놓아야 한다…!
- 부업: 한창 슬럼프일 때 부업에 관심이 생겨서 이런저런 부업들을 기웃거렸다. 지금은 슬럼프가 아니지만 짬내서 진행중이고 그나마 많이 한 것은 전자책 쓰는 거다. A/B 테스트 책을 한 권 추천하라면 당연히 하마책이지만 실무자 혹은 실무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정도 레벨에서 만들어진 책이 없었기 때문에 A/B 테스트 전자책을 쓰고 있다. 생각보다 책이라는 게 하나 고치면 연결돼서 고칠 게 많아가지고 밀리고 있는데 올해 안에는 공개하고 싶다.